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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 도약 새로운 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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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shine광양

형제 의병장

인 물 : 형제 의병장 강희보/강희열
교 통 : 광양읍 - 봉강면 신룡리 (시내버스 1일 15회 20분 소요)
주변관광지
  • 성불사, 성불계곡, 매천 황현유적, 신재 최산두선생 유허비

주요내용

임진왜란 일어나자 의병 일으키다

강희보(형)와 강희열(동생)은 1560년 경에 봉강면 신촌마을에서 강천상(진주강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강희보는 광양에서 100여명의 의병을 모아서 그때 당시 영호남을 잇는 군사적 요충지인 단성(지금의 경남 산청)에서 적과 싸우고 있던 백부 강인상을 구원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달려 갔다.
무과에 급제한 동생 강희열은 그때에 역시 영호남의 군사요충지인 구례군 토지면의 석주관을 지키던 중에 휘하 군사를 이끌고 단성으로 달려가 백부를 구원 하였으며 싸움이 끝나자 다시금 돌아와 석주관을 수비하였다.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 장렬히 전사

임진왜란 초기에 위세를 떨치던 왜군은 행주산성싸움에서 권율장군에게 크게 패한 후 위세가 꺽이어 1593년 4월부터는 경성(서울)을 철수하여 남하하기 시작하였고 6월에는 경상남도 진주쪽에 머무르게 되었다.
한편 진주성을 지키던 장수들은 10만이 넘는 왜군이 밀어 닥치자 많은 장수가 흩어졌으나 김천일 장군이 분연히 일어나 휘하 군사를 이끌고 의병과 합세하여 진주성 수비에 나섰다. 진주성의 위급한 상황을 전해들은 강희보, 강희열은 휘하 장수들을 이끌고 김천일 장군의 지휘아래 들어와 싸우다 593년 6월 27일(강희보 전사)과 29일(강희열 전사) 각각 장렬히 전산 하였다.
그 당시 진주성 싸움은 아군 병력이 1만여명인데 비해 왜군은 10만이 넘는 대규모 병력으로 비교가 되지 않았으나 9일간의 혈투 속에서 아군은 물론 전사자를 내는 등 피해가 막심하였다. 이때 아군의 강력한 대항으로 병력손실을 크게 입은 왜군은 결국 진주성에서 철군하고 말았다.

뒷날 조정에서는 희보,희열 형제를 진주 창열사에 배향하였고, 영조 40년에 강희보에게는 형조좌랑(정6품), 강희열에게는 병조참의 (정3품)가 추증되었다. 1970년에는 강씨문중과 광양의 유지들이 [강희보, 강희열 형제장군 숭모회]를 창립하여 봉강면 신룡리에 묘소와 묘비를 보수하였고 사당을 건립하였으며, '98년 동재, 서재 삼눈등을 신축하고 사당과 관리사를 이축하여 규모를 갖추었다.

  • 담당부서 문화예술과
  • 담당자 최상종
  • 연락처 061-797-2418
  • 최종수정일 2016-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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