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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황현

인 물 : 매천황현
교 통 : 광양읍 - 봉강면 석사리(시내버스 1일 15회 10분 소요)
주변관광지
  • 성불사, 성불계곡,형제의병장 강희보/강희열, 신재 최산두선생 유허비

주요내용

어렸을적 부터 시문에 뛰어난 천재

한 말의 문장가요 시인이며 예리한 시각으로 시대와 역사를 비판한 우국지사 매천 황현 선생은 1855년 음력 12월 11일 봉강면 서석촌에서 태어났다.본관은 長水로 황희 정승의 후손이지만 가계가 가난하고 몰락하여 농민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다행히 조부가 가세를 일으켜 아버지는 황현의 입신양명을 위해 집에 천 권의 책을 비치하는 등 온갖 정성을 쏟았다. 한편 황현은 2.3세때 숯덩이를 들고 다니며 글씨 쓰는 시늉을 하였으며 7세에 서당에 다니기를 시작하였는데 7세 때 지은 시가 전해온다. 매천은 이처럼 어릴 때부터 체격은 작고 약했지만 총명하였고 특히 시문에 뛰어나 당시 호남의 대유학자 기정진도 그의 재능을 높이 칭찬하였다.

벼슬살이 마다하고 학문에만 전념

매천의 벼슬길은 어지럽던 당시의 사회상 만큼이나 순탄치 않아 시작부터 꼬였다. 29세 때인 1883년(고종20년) 과거에 응시하여 초시초장에서 장원에 뽑혔으나 시험관이 그가 몰락한 가문 출신임을 알고 차석으로 떨어뜨렸다.
이에 당시의 부패한 과거제와 조정의 현실을 간파한 그는 벼슬의 뜻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 역사비평서 '매천야록'등 저술 매천은 집필에도 열중하여 그의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이 깊이 배어있는 역사비평서인 '매천야록'을 비롯하여 시문집인 '매천집','매천속집'과 '동비기략'을 저술하였다.

1999년 8월의 문화인물에 선정

'매천야록'은 1865년부터 1910년 8월 까지 45년 동안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을 매천이 주관적 안목으로 정리하여 편년체로 구성한 책이다. '매천야록'이 최근 역사의 중요한 자료로서 주목을 끌고 있는 점은 이 책이 중요한 정사를 빠짐없이 담았을 뿐만 아니라 비사와 야사 그리고 민중의 여론을 함께 실었다는 점이다. 또한 매천의 학문적 깊이와 예리한 비평의식이 그의 애국심과 배합되어 좋은 향기를 풍기는 책이기도 하다.
매천은 51세 때인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여러 날 음식을 먹지않고 통탄하며 우국의 심정으로 매국노를 성토하는 시를 지었다. 이러한 울분을 억누를 수 없었던 매천은 1905년 6월 김택영이 중국으로 망명할 때 그와 동행하려 했으나 종손 집안에 홀로 남게된 부인이 간절하게 말림으로써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가 1910년 한일합방의 치욕을 당하자 1910년 음력 8월 7일 56세를 일기로 자결하기에 이른다.
매천은 뛰어난 문장과 깊은 학문적 소양, 예리한 역사비평의식과 애국.민족정신을 가진 조선조 마지막 선비로 우러름을 받고 있다.
선생의 묘소는 봉강면 석사리에 있다. 1999년 8월의 문화인물에 선정되어"매천황현의 문학과 역사의식 세미나" "일대기연극" "유품전시" "추모백일장"등의 행사를 가졌다.

  • 담당부서 문화예술과
  • 담당자 최상종
  • 연락처 061-797-2418
  • 최종수정일 2016-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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