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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CO

POSCO
글로벌 No.1 자동차 강판 전문 제철소
대표전화061-790-2447
주소전라남도 광양시 폭포사랑길 20-26
카테고리 분류 주요 관광지 

지역정보

관광명소 지역정보를 나타내는 테이블입니다.
지역별 금호동 광양만권

요약정보

1980년대 국가경제가 발전하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철강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포항제철소에 이어 국내 두 번째 종합제철소이다.


1981년 제철소 입지가 확정되어 1985년 제1기공장 착공을 시작으로 1992년 제4기 준공, 1999년 제5고로를 준공한 광양제철소는 소품종(열연·냉연고일) 대량생산은 물론 글로벌 No.1 자공동차 강판 전문 제철소로서 조강 생산량이 단일 공장 규모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제철소이다.


그 밖에 2007년 마그네슘 판재공장과 2008년 SNNC 페로니켈공장이 준공되었고 2010년에는 연간 200만톤 규모의 후판공장이 준공되었다.

상세설명

남도의 젖줄인 섬진강은 열두 고을 진토(塵土)를 품고 흐르다가 남해를 접하면서 두 개의 섬(金湖島․太仁島)을 만들었다. 이곳은 남해안 중심지로 전남과 경남을 좌우로 하여 산을 등지고, 바다를 품고 있다. 뒤로는 백운산, 가야산, 남해 금산이 비보 풍수설처럼 재난을 막아주고, 쇠섬은 태풍을 꺾고 조수의 간만을 조율하며 뱃길을 태평양으로 열어 놓았다.

 

금호도는 태고로부터 모래와 뻘이 쌓인 퇴적층이며 낮은 능선과 고랑 건너에 치맛자락 같은 넓은 모래 둔덕을 안고 있었다. 이곳은 맛이 좋고 고기와 조개가 무진장 잡혀 소박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곳이었다.

 

특히 밀물 때는 바닷물에 잠기는 모래벌판은 김의 텃밭이었다.

 

금호도와 강줄기를 사이에 둔 태인도는 삼봉산(220.3m)을 중심으로 8개의 능선이 문어발 형국으로 조성되어 있고, 30년 전에는 3천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금호도란 지명을 살펴보면 금(金)자는 쇠‧금속‧광물을 총칭하며, 돈‧황금이고, 방위는 서쪽을 뜻하며, 호는 호수란 뜻이다. 따라서 황금을 품고 있는 호수의 섬이란 해석이 가능해진다.

 

금호도는 1530년에 만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우도(牛島)라는 이름으로 역사의 기록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1861년 명예궁수세절목에 비로소 금호도로 명기되어 있으나 지금처럼 부르고 쓰기는 1896년 명예궁수세절목에 비로소 금호도로 명기되어 있으나 지금처럼 부르고 쓰기는 1896년 돌산군 북면에 편입된 이후였다.

 

우도가 금호도가 된 것은 본디 토박이말로 ‘소성’이란 한자를 쓸 때 우도라 했고 ‘소는 쇠가 되어 금자로 표기했을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섬이지만 내면에 있어서 바다 보다는 호수에 가깝게 여겨져 금호도라 부른 듯하며, 태인도 마저 인호도라 쓴 적이 있고 인근에도 그런 지명의 예는 더러 있다.

 

이 섬에는 1980년도 초 4개 마을 265세대, 1875명이 살고 있었으며 내동 넘어 원안들은 옛날 논이었지만 지금은 제철소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세어져 있고 그 넘어 양도마을은 염소 섬이라 했는데 연유는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염소를 사육하여 군납함으로서 얻어진 이름으로 양도(洋島)라 부르게 되었다.

 

또한 1891년에 간행된 『호남읍지』에도 ‘우도에 염소를 방목하기 위하여 목장을 설치했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금호는 원래 크고 작은 섬이 13개나 있었으나, 11개는 부지조성 공사로 사라지고 지금은 제철소 안에 서취도와 소서취도 2개의 섬이 능의 형태로 남아 옛 지명을 유지하고 있다.

 

황금어장이 쇳물공장으로 변한 연유를 살펴보면, 해방된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철강산업이 필요했다. 처음 추진한 모회사는 ‘포항제철로 1968년 4월 1일 자본도 경험도 기술도 없었던 불모의 땅에 제철소 창업을 선언한 것은 불굴이 도전정신과 창조적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발전하는 근대화로 건설과 번영사업이 확장됨에 따라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자 ‘정부는 1982년 11월4일 금호지구 일원에 포항제철 제2공장 건설’을 발표했던 것이다.

 

제철소 건립 조건은 이웃나라의 정보탐지기인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고, 수심 25m 내외일 것과 태풍과 재해에 안전하며, 조성비가 적게 들고, 출입이 자유로운 곳이어야 하는데 이런 조건에 적합한 광양만에 제철소를 건설하게 된 것이다.

 

일은 급속도로 추진되어 1년 후에 부지 조성 기공식을 거쳐 3년 후에 완공되었고 종합공장건설 기공식을 가진 뒤 1기 설비공사는 1987년 5월 7일 준공을 보았다.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후보지를 보러온 외국기술자가 지명에 쇠금 자가 들어있는 장소를 찾아보았다는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부지조성 공사는 남쪽으로 돌기된 11개 섬을 폭파해 얻은 돌로 14.8m의 둑을 쌓았고, 10톤 트럭 천만대 분량이 흙은 하구에 쌓인 모래를 활용해 1,500만㎡(4백54만평)의 부지를 확보했던 것이다.

 

또한, 직경 40㎝ 모래말뚝 104만본을 2m 간격으로 깊이 25m까지 박아 갯벌에 함유된 해수를 제거하는 작업을 거쳐 지반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때 모래 말뚝의 총연장은 22,600㎞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길이였다.

 

그리고 18평 아파트 14만 가구를 지을 수 있는 시멘트를 쏟아 부어 공장부지가 조성됨으로서 천지개벽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종사인원은 연간 2,650만명이 투입된 대역사이며 투자된 금액은 20조원에 이른다.

 

제철소 건설 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단기간에 제5고로까지 세워진 광양제철소는 제1기 설비공장이 왼공되었을 당시 연간 1,180만톤의 철강이 생산되었으나, 그 후로도 계속 고로를 확장한 결과 2013년 기준 2,023만톤의 쇠를 생산해 수출하고 있다. 연간 매출액은 15조가 넘어 하루 410억원이 넘으며, 영업이익은 1조 5,000억원으로 하루 41억을 벌어드리고 있으니 기적이 이루어진 셈이다.

 

뿐만 아니라 교통은 화물열차가 제철소 안까지 드나들고, 뱃길은 태평양으로 열려져 있으며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는 처음 건설한 금호대교를 비롯해 5개소나 되고 건설 중인 2개소를 합하면 7개소가 된다. 2013년 개통한 이순신대교 주탑 높이는 270m, 길이는 1,545m로 길이는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해를 나타낸다. 그 외 토크는 3백만 톤의 화물선 2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고 6선석이 매일 움직이고 있다. 또한 주원료는 철광석과 석탄인데, 호주에서 철광석은 연간 2,800여만톤 중 70%, 석탄 1,245만톤 중 50%이상을 수입하고 있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남해안의 조용한 어촌이었던 작은 섬에 세계굴지의 제철소가 세워질 것을 누군들 생각이나 했을까?

 

광양제철소로 인해 연관 회사가 50개 이상이나 되며 일자리는 1만 7천여 개가 창출되었다. 또한, ‘국가기간산업으로 나라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지역에도 재정적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으니 값을 헤아릴 수 없다. 다만 자연이 만들어 준 천혜의 해안늪지가 사라지고, 풍성한 먹거리를 얻지 못함과 조상 대대로 살던 곳을 떠나야 했던 주민의 처지가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러나 먼 훗날, 후손들은 우리에게 역사를 창조했다고 아름답게 찬미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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